[연해주 여행기] 07.26. 잿빛 하늘

2019. 7. 30. 17:04여행기/2019 Vladivostok

 

 


 

 

호텔에서 보이는 흔한 연해주의 하늘

 

분무기로 흩뿌리는듯한 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흔한 날씨인 듯 행인 중 우산을 든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다. 자연스레 이방인의 눈에도 우산을 든 사람들이 이방인처럼 보였다. 비가 오는 날이 잦아서일까.

 

호텔 앞 도로가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첫 목적지인 레닌 동상 앞으로 향했다. 묵었던 젬추지나 호텔에서 블라디보스토크 역으로 가는 길에 있는데, 늘 중국인 관광객이 몰려서 사진을 찍는 곳이기 때문에 지나치기가 오히려 어려운 곳이다.

저 멀리로 커다란 역사(驛舍)가 보이고 그 뒤로 거대한 금각만 대교까지 보인다. 교통량이 많은 곳 같았는데 관광버스까지 가세하니 그야말로 시장바닥을 방불케 한다.

사진을 가로지르는 흐릿한 선이 금각만 대교 되시겠다.

 

 

 

Ле́нин의 동상은 아직도 소비에트 시절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저 먼 남동쪽 부동항을 향해 손가락을 뻗고 있는 레닌 동상 앞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자본주의적인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구호를 외치고 있는 장면이 희극인지 비극인지 모를 기괴한 울림을 준다.

 

지나칠 때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참 많았다. 러시아 운전수가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고, 가이드가 그들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건네기도 했다.

 

그들에게 이곳은 단순히 관광지였을까, 아니면 순례자의 마음으로 찾은 곳이었을까. 연해주 시내 곳곳에 아직도 남은 낫과 망치의 흔적을 볼 때마다, 그리고 중국 관광객들이 거기서 밝은 표정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걸 볼 때마다 기분이 이상했다.

 

 

 

 

 

 

 

묘하게 유럽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거리. 북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런 느낌의 거리가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 우측 상단에 빼꼼히 보이는 그래피티가 헷갈릴 수 있는 광경에 러시아 느낌을 더해준다.

 

 

내리막길 사이로 갑자기 금빛 돔의 성당이 보이기도 한다.

 

 

 

연해변경주청이 있는 사거리. 기차역 근처에 숙소를 잡은 여행객이라면 여러 번 지나다니게 된다. 사진의 정반대 방향을 보면 그 유명한 혁명 광장을 볼 수 있다.

 

혁명광장으로 향하는 길. 건너편 건물은 산뜻하지만 왠지 모르게 급조된 느낌도 난다.

 

바로 두 블럭 뒤의 건물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다.

 

 

 

이 날은 성당 앞이 주차장이었지만, 주말이 되면 장이 열린다.

광장에는 비둘기 떼와 갈매기 몇 마리가 뒤섞여 있었다. 갈매기는 물갈퀴 달린 비둘기나 다름없었는데 상당히 가까이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아스팔트 위에 서서 빵조각에 눈독을 들이는 갈매기를 어디에서 또 만날 수 있을까.

 

 

한국 관광객들이 유난히 자주 찾는 식당 Zuma로 향하는 길에 보이는 이고르 체르니코프스키 성당이다. 한 블록만 떨어져도 북적북적한 거리인데 성당 근처는 유난히 조용했다. 물론 평일 아침시간이었던 것도 한몫했으리라. 밖에서 멀찍이 떨어져 사진을 담아두고 산책하듯 디나모 경기장과 성당 사잇길을 걸어 식당으로 향했다.

 

 

냉장 대게. 소스는 맛있었지만 살은 좀.. 4월부터 7월은 대게가 없다고 들었다.

찾아갔던 날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12시에 예약을 했었는데 예약을 하지 않았더라도 아마 이용에는 지장이 없었을 것 같다. 유난히 한국인 손님이 많았으며 직원들이 매우 친절했다. 한국어 메뉴판도 있고 직원들이 간단한 한국어 단어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손님들처럼 계산 후에 게 모양 자석을 선물로 받았다.

딤섬도 맛있고, 다른 고기 요리도 맛있었다. 게 다리는 안쪽에 칼집이 나 있어 살을 발라먹기 편하다. 마늘 소스보다는 색이 진한 감칠맛 넘치는 소스가 더 입맛에는 맞았다.

 

바닷가 쪽으로 산책하며 만난 고양이과 맹수의 동상! 사람들이 쓰다듬고 지나간 자리가 반질반질해졌다. 역시 고양이는 인간의 친구인 것. 이 옆에는 고양이 발바닥 모양의 맨홀이 덮여 있었다.

 

 

관람차만이 총 천연색으로 돌아가는데, 하늘도 그렇고 사람들 표정도 모두 잿빛에 가깝다.

 

 

러시아식 건축 양식이라고 친구들에게 농담을 할 만큼 공사 현장이 정말 많다.

아르바트 거리로 들어가기 위한 횡단보도에서 찍은 사진.

건물을 증축하는 모양인데, 안전 펜스 같은 것들이 상당히 간소해 보였다.

 

 

온 동네 관광객들은 다 모여있는 아르바트 거리. 원래는 모스크바에 위치한 유명한 번화가이다. 푸쉬킨과 레르몬토프 같은 작가들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하는데, 연해주에 있는 아르바트 거리는 참 아담하다. 2층을 넘는 건물이 별로 없다.

 

 

아르바트 거리에 위치한 Tortoniya 라는 카페에서 주문한 모카.

아르바트 거리 어딘가의 2층으로 향하는 철제 계단을 올라 들어간 카페 Tortoniya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쉬었다. 특이하게 중국어 메뉴판은 있어도 영어 메뉴판은 없었는데, "английский?"라고 물어봐도 영어 메뉴판은 없다고 했다. 더듬더듬 아즈부카를 읽으며 모카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아메리카노는 아담한 잔에 60 RUB, 모카는 더 아담한 유리잔에 180 RUB. 모카와 유리잔, 플라스틱 빨대가 서로 어울리는 것인지는 차치하고, 그냥 라떼 같은 맛이 났다. 종업원들은 상당히 퉁명스러웠고 테이블은 덜컹거렸다. 의외로 구글 리뷰는 나쁘지 않은 편.